| 뮤지컬 Musical | 사랑의 역사, 혹은 역사의 사랑 – 뮤지컬 ‘닥터 지바고’ |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남자는 러시아의 의사이자 시인이고, 이 나라가 한참 혼란스러웠던 때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인물이다. 전쟁과 연달아 터지는 혁명 속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갈등하는 닥터 지바고의 생애를 뮤지컬로 다시 만났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동명 소설 ‘닥터 지바고’는 550여 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을 가진 그야말로 대서사시이다. 뮤지컬로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페이지 수만 봐도 알 수 있다.
작품 안을 들여다보자면 여러 역사적 사건들이 배열되어 있다. 러시아 혁명과 제 1차 세계대전, 볼셰비키 혁명까지…특히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은 러시아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닌의 공산주의와 차르의 절대왕정, 우파와 좌파, 귀족과 평민 사이의 혈투였지만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들 역시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희생해야만 했던 그 때.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비교적 부유하고 평안한 인생을 살아온 지바고도 예외는 아니었다.
뮤지컬 ‘닥터 지바고’는 이러한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추어 진행된다. 물론 이들의 애정 전선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토냐와 파샤, 코마로프스키의 이야기까지 담아내고 있다.
1막은 역사적 설명을 배경으로 많은 사건들이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이는 무대장치의 화려하고 다이나믹한 전환으로 한 눈에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감상할 때 가장 눈여겨 봐야할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연기와 더불어 웅장한 무대 전환과 장치, 현란한 조명, 수백 벌에 이르는 무대 의상 등이 단순히 ‘연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원작의 장엄함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의 2막에서는 1막과는 다르게 주로 각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어 진행되는데, 여기서는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할만한 곡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화제의 중심이 되었던 이 작품의 히로인 지바고 역에는, 이미 ‘지킬 앤 하이드’로 많은 사랑을 받은 조승우와 홍광호가 선택되었다.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일명 ‘조바고’와 ‘홍바고’로 통할만큼 두 사람의 존재감은 과연 폭발적이다. 베테랑 배우다운 여유로움을 겸비한 조승우와, 뮤지컬 좀 봤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홍광호의 무서운 가창력은 관객들로 하여금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조승우의 지바고가 남성답고, 파워풀하다면 홍광호의 지바고는 부드럽고 인간적인 면모를 내세워 서로 다른 매력을 뽐낸다. 또한 뒤에서 탄탄하게 받쳐주는 다른 배우들의 가창력과 연기력 또한, 닥터 지바고 흥행돌풍의 주역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도 지바고가 라라와 함께 내리는 눈을 맞으며 노래하는 마지막 장면이 그려질듯 선명하다. 그가 험난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순수와 진정성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사랑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랑의 역사인가, 역사의 사랑인가. 어느 쪽이든 중요하지 않다. 태곳적부터 인류의 역사는 사랑이었고, 인류의 사랑은 역사였으니까.











